1차. 스메라기 야쿠모x시모츠키 쿄 계약연애.

야쿠모→쿄인 상태에서 쿄→야쿠모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경우. 진심루트. 현재 아직 자각 없음.

 

 

 

 사람이라는 것은, 간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우선인 법이다.

 

 시모츠키 가에서 태어나 차기 당주로 키워진 현재까지도, 그 사실 하나만큼은 어릴 적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 자체도 그 자체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깨끗하고 정갈한, 어딜 봐도 돈 몇 푼으로는 어림없을 외관과 조금씩 담겨 나오는 고급 식재료로 만든 요리들. 귀한 이를 대접하기에 안성맞춤인 고급 요릿집이라는 티가 풀풀 났다. 파티션으로 나누어진 바깥과는 차단된 공간과, 좌식의 공간에 의자를 놓아 조금 덜 불편하게 만든 자리. 상대가 자신이 '시모츠키'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 자체는 이 자리로 초대받은 시점에서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바깥에서 '퇴마사' 라는 직업 자체는 멸시하는 자들이 넘쳤으나 이형과 요괴에게 시달린 이들에게는 탐탁치 않아도 실력있는 자를 찾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느 날, 제 집안으로 날아들어온 초대장 자체가 달갑지 만은 않았으나, 차기 당주로서 해야할 일이라는 소리에 한숨을 길게 뱉어내고 차를 준비시켰다. 그래서 온 곳이 현재, 지금의 이 자리였다.

 

 "그래서, 차기 당주께서 가장 실력있다 해 모셨습니다만..."

 "그렇게 오래 되었다면, 저 말고도 다른 곳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을 소멸시키길 원합니다."

 

 은근한 침묵과 정적이 흘렀다. '다른 곳' 이라고 흘린 이유는 단순한 얘기였다. 이 세계는, 자신 말고도 뛰어난 이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제 자신이 다른 이들을 전부 잡아먹고 태어났다. 고 불릴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다 해도, 완전무결한 최강자는 없는 법이니까. 이 세계에 속한 이들이라면, 언제고 한 번은 들었을 이름. '스메라기.' 하긴, 그 집안은 소멸과는 거리가 멀지. 사사건건 자신과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고 부딪히는 이였다. 나이차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당신과는 어디서부터 얽혔을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니면 그 이후에 자신과 일이 겹쳤을 때부터?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현 상황은 자신에게 알맞은 의뢰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제 앞에 앉은 사내는 정갈하다 못해 딱딱해 보일 정도로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목 끝까지 채운 단추와 단정히 맨 넥타이, 흐트러짐 없는 옷 매무새의 정석과도 같았다. 제 앞에 놓인 찻잔에서 피어오르던 김이 사라지고, 조용한 정적만이 무겁게 공기를 눌렀다.

 

 "알겠습니다. 받아들이도록 하죠."

 

 어차피, 자신은 이 의뢰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가 '사람'인 이상은 결코. 의뢰 내용 자체는 단순했다. 집안 구성원 전부가 하루가 멀다 하게 번갈아가며 크고 작게 다치는 데, 그게 원인 규명을 할 수 없고 꼭 무언가를 만진 후에 일어난다는 것.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해보이기에 원인과 결과를 규명할 수 없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상에서 그치는 정도일 뿐이지 아직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 사람이 없다는 것. 사람이 다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상세한 내용을 듣고 보니 그냥 우연한 사고, 로 처리하기에는 찜찜하기 그지없는 얘기들이 많았다. '만졌다.' 라는 것은 그 물건이 매개체라는 것이고,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겠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젖혔다. 하. 담배피우고 싶어. 일렁, 치밀어 오른 짜증을 꾹꾹 내리누르고서, 먼저 상대를 내보냈다. 간략하게 적힌 의뢰의 내용과, 의뢰인의 서명,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자신의 서명이 적힌 계약서를 톡, 톡. 손 끝으로 건들다 손바닥으로 종이를 누르고 나직하게 말을 읊었다. 순식간에 새로 변한 종이가 제 본가의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슬슬 일어날까, 싶어 식은 찻잔을 내버려두고 한 쪽에 걸어두었던 제 겉옷을 집어 걸쳤다. 탁탁 털어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서 일어서 파티션을 열려던 참이었다. 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 '말'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진작 그 자리를 벗어나고도 남았을 텐데.

 

 "미신에 기대야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말이지."

 "해결만 되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가시죠."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의뢰를 '부탁했던' 이의 목소리였다.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미신취급이라니. 몇 번이고 겪었던 일이었으나 늘 욱신, 하고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늘 이런 식이었다. 이 바닥에서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진 이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 자신이었다. 늘 이런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사람을 버리지 못했다. 매번 이렇게 다치면서도 사람을 놓지 못하는 자신에게, 그는 자신을 어리석다 얘기했지. 그러나 당신도 분명 알고 있을 터였다. 자신과 당신은 닮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사람에게서 받은 애정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버릴 수가 없다는 그 사실도. 그래도, 이번엔 좀 힘겹다. 당신이 나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것은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쌓이고 쌓인 세월들이 이번의 말 하나로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늘, 사람에게서 애정을 갈구하고 그들의 안식을 바라는 자신으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여전한 '미신' 취급이라. 이렇게까지 망가져버린 때는, 반쯤 오기로 시작한 당신과의 연애놀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명목상으로 이루어진 연인이라 할 지라도, 최소한 쫓아내지는 않을 터였으니.

 

 대기시킨 차를 불러, 당신의 저택으로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당신은 요즘 자신에게 묘하게 물러진 때였으니. 처음에는 제 착각이라 생각했다. 요괴의 놀음에라도 취한 것일 거라고. 아무리 당신이 자신 이상의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근본적으로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고, 당신을 홀리기에는 그것들의 연륜이 더 클 테니까.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나를 원하고 있었다. 눈치채는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사건건 부딪힌다고 해도, 당신 또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당신이 손을 내밀면 결코 내치지 못할 것을 당신 또한 알고 있을 터였다.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한 당신의 집에서 사람이 나오고, 달가워 하지 않았으나 자신을 안으로 들여 보냈다. 긴 복도를 따라 당신의 방에 도착하자, 일렁이는 불빛과 밀린 일을 보고 있는 당신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 나 좋아하지? 시간 좀 내."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에게 툭툭 뱉는 말버릇이 건방지다고, 세간에서는 그리 칭할 수도 있었으나, 이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 '스메라기'가의 가주, '스메라기 야쿠모'와 '시모츠키'가의 차기 당주인 자신. '시모츠키 쿄'의 관계는 유명했으니까. 이런 관계가 될 줄은 자신도, 그도 몰랐을 테니 더더욱. 자신은 자신을 좋아하는 그를 쉬이 눈치챘고, 이런 상황이 생길 때 그를 찾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왜였을까, 발밑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이가 당신이었다. 들고 온 술병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짧게 내뱉은 한 마디는, 당신의 손이 서류를 내려놓게 하기에 충분했던 듯 싶다.

 

 "술 상대나 해줘."

 

 그리 긴 말은 없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생각보다 당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는 것과, 그 날의 달이 미치도록 밝았다는 것. 그러니까 이건-

 

 아무튼,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Posted by 한 율 :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가지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일단 시험기간이 닥쳤으니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이치와 순리에 맞는 일이겠으나, 제 앞에 자리한 이 놈은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사는 모양이었다.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은 자신 또한 마찬가지고, 의지가 없는 놈을 일으키는 일 만큼 미친 짓 또한 없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이 놈을 안 깨울 수도 없는 일이지.

 

 "야, 김선호. 일어나 임마."

 

 애초에 남의 자리를 대놓고 지 자리인 것마냥 앉아있는 꼴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너무 당당하게 앉아서 자고 있기에 순간 내 자리 아닌 줄 착각했네. 자신이 말을 내뱉은 지는 1분 이상 되어가는 데, 아무래도 얘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모양인 지라, 머리를 헝클어 놓고 툭툭 쳐서 간신히 깨워냈다.

 

 "더럽게 오래 자네. 거기 내 자리거든."

 

 한숨을 가볍게 쉬고는 도로 퍼질러 자려는 놈을 붙잡았다. 얘 진짜 아무 생각 없구만. 아예 이렇게 정신을 다른 데에 놓고 있다면야 그냥 아예 제대로 노는 편이 서로에게 이득일 테지. 솔직히 제대로 분위기가 안 잡히는 것도 안 잡히는 거지만, 얘가 계속 이러고 있는 데 나 또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 또한 없고.

 

 "야, 김선호."

 

 그래도 제 이름이라도 반응하는 걸 보자니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얘 앞에 마주 앉고는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고, 뺨을 톡톡 건들고 나서야 제 손을 거두어 들이고 시선을 마주했다.

 

 "광합성이나 하러 가자."

 

 말이 좋아 광합성이지 실상은 땡땡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좋은 게 좋은 거지. 게다가 다음 시간은 어차피 땡땡이 쳐도 상관따위 없는 과목이니. 광합성, 이라는 내 말에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한데.. 왜 도로 퍼져 임마. 슬쩍 인상을 찌푸리고는 김선호의 손목을 쥐고 그대로 끌어내고는 일으켰다. 주변 애들한테 대충 아프다고 둘러대라는 말도 잊지 않고. 내가 얘기하는 것보다야 타인이 얘기하는 게 좀 더 신빙성 있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그리고 일단 이 몸으로 아프다고 얘기해봤자 안 믿을 것 같으니 더더욱 남의 입을 빌리는 게 이래저래 좋겠지.

 

 "봄 타나, 왜이리 죽어가냐."

 

 어차피 추위에 약한 놈이니 이 날씨가 훨씬 낫기야 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말 춘곤증으로 취급해주기에는 좀 과하게 자는 것도 있고. 그래도 감기 걸리는 것보다야 낫지. 예전에 한 번 끌고 나갔다가 감기 걸려서 그거 간호하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좀 오싹하다. 그 고생과는 별개로 아파서 지랄해도 그저 약해보이는구나, 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지만. 하루 꼬박 간호하고 나면 멀쩡해지니 다행이라면 다행인 걸까. 대체 무슨 남자애가 이렇게 몸이 약해. 이거 진짜 운동부족이라 그렇게 약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휴식이 좋은 것이라고들 해도, 얜 일단 체력부터 키우는 게 우선일 것 같으니.

 

 "너 진짜 나랑 운동이나 같이 하자."

 "시끄러, 니가 운동 바보인거야."

 "그냥 니가 저질체력인거라니까."

 

 깼나보네. 거의 반 이상 질질 끌고가던 모양새였으나 아까보다야 무게가 덜 실리기도 하고, 이렇게 멀쩡하게 대꾸하는 걸 보아하니 확실한 것 같았다. 픽, 웃음이 흘러 나왔으나 그대로 끌고 학교 밖까지 나갔다. 어차피 금방 들어갈 거기도 하고, 그리 멀리 갈 예정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햇빛 많은 곳으로 데려가 그 근처에 대충 앉았다. 아, 따끈따끈하네. 그렇게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온도에 햇빛이 딱 적당히 쏟아지는 곳이라 노곤노곤할 정도로 몸이 풀어졌다. 따끈따끈하게 구워지는 식빵이 된 것만 같군.

 

 "좀 있어봐."

 

 김선호를 그대로 앉혀둔 채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군것질거리를 양 손 가득 쥐고 돌아왔다. 과자나 그런 것들 위주긴 하지만, 배고픈 것보다 낫기도 하고. 땡땡이 칠 거면 제대로 치는 쪽이 나으니까. 이도저도 아닌 맹맹한 땡땡이는 재미없기도 하고. 햇빛이 제대로고 날도 풀렸으니 이 자식 감기걸릴 걱정은 적어도 오늘은 안 해도 되겠지. 저번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음, 그 땐 정말 끌고 운동하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네.

 

 "맛있냐? 하긴, 공산품인데 맛 없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만."

 "시끄러. 이번에도 아프면 니 탓이야."

 "글쎄 그냥 니가 저질체력인 탓이라고."

 

 저번에도 한 번 땡땡이 쳤지만, 그 때와는 달리 확실하게 온도가 포곤포곤할 정도이니 오늘은 좀 걱정 안 해도 되겠지. 얘는 정말 면역력 세포를 더 주입해야하나, 왜 그리도 쉽게 감기에 걸리는 건지. 그래도 뭐.. 혼자 치는 땡땡이보다 이게 더 덜 심심하고 공범만드는 거니까 좋기도 하고.

 

"광합성하는 김에 너 키나 더 크라고 빌어보는 건 어떠냐."

"님 뒤질?"

 

작게 킬킬대고 웃다가 역시 그건 안 되겠지? 라고 장난스런 말 또한 더했다. 그리고 일단, 말마따나 정말 광합성하는 대로 더 커버리면, 얘가 나보다 더 커질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상상해봤더니 그건 또 좀 자존심이 상하네.

 

 "이대로 좀 더 있다가 가자. 여기 딱 낮잠자기 좋다."

 

 그리고 너도 일단 공범이다. 저번에도 그랬듯이.

 

  

Posted by 한 율 :

[여백여귀]아네모네

2015. 6. 22. 16:57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白鬼] 무제

2015. 1. 1. 18:34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시라카가 마피아AU입니다.

* 시라사와 짝사랑입니다.

 

 

 

 

 늘 그 녀석에게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람의 피 냄새가 묻어났다. 이 세계의 직업 특성상, 피 냄새는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쳐도 그 혈향이 매번 다른 이의 것으로 바뀌어 묻어난다는 것은 이곳에 속한 자들 사이에서도 그리 좋게 볼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 또한 문제가 되질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가치라는 이름의 그 자들 사이에서도 한참 위에 자리한 이 패밀리의 언더보스에게 직접 반항하고 대들, 간이 크다 못해 부어 터져버려서 사라진 자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네가 어떠한 경위로 그다지 바르다고는 할 수 없는 이 곳에 발을 들인 것인지 완벽하게는 알지 못했다. 우연히 이 패밀리의 보스가 피칠갑이 된 너를 위해 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몰랐을 것이다. 평소 사람좋은 얼굴을 한 이 패밀리의 보스는 치료를 하는 자, 라는 직분에 있기 때문인지 개인적인 판단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거리낄 것이 없는 지 네 사정을 좀 알아줬으면 한다며 네 얘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그가 늘어놓은 이야기는 꽤나 장황하고, 횡설수설하는 이야기였지만, 아주 간단히 추리자면 오갈 데 없는 너를 거두어 이 패밀리에 속하게 한 것이 그 라는 것. 어쩐지 매번 다치는 걸 감수해가며 다른 자의 혈향을 묻혀 자신을 찾아오는 그를 보고 있자면,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시커먼 감정의 덩어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울컥 올라오는 듯 했다.

 

 매번 전투에 참여했다, 는 소식을 들으면 돌아올 때는 꼭 너덜거린다 싶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돌아오고는 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 녀석 또한 많은 환자들 중 하나였기에 단순히 치료만 해주고 돌려보내고, 그 또한 치료를 받자마자 홱 하고 돌아서는 관계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가 가진 직급에 이르기까지에는 많은 전투가 있었고, 그 때문에 가장 단시간에 어소시에트에서부터 언더보스까지 이른 자, 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남들보다 배는 잦은 전투 탓에 다른 자들보다 그를 보는 일이 많아졌고, 그도 꽤나 자주 보는 제게 그리 나쁠 것이 없다 판단한 것인지 치료를 받을 때 간간이 제게 말을 던지고는 했다. , , 던지는 그의 말에 응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를 자세히 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의사, 라는 제 직분에 충실할 뿐이었지만,

 

 아주 천천히, 조금씩, 말을 섞는 것이 늘다보면 자연스레 태도 또한 변해가는 법이다. 그런 탓일까, 마냥 슬렁슬렁 넘기던 네 이름외의 어떤 무엇인가에도 차츰 관심을 갖고 대하기 시작한 건, 그 즈음부터일 테지. 가장 먼저는 네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차분한 무게를 지닌 깔끔한 바리톤의 음성은 네 말에 힘을 실었다. 어떤 사소한 말이든 특별하게 들리는 무기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매번 다쳐올 때마다 부상을 입은 곳만 살피던 것과는 달리 전체적인 것을 보기 시작했다. 새까만 정장이 잘 어울리는 다부진 체격과 피칠갑을 하고서도 고고한 분위기가 도는 네 외양. 마치 밤의 세계에 어울리려 태어났다는 주장을 하는 것만 같은 새까만 흑발 또한. 가랑비에 서서히 옷이 젖어가듯, 너 또한 서서히 내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어느 날 한 번은, 네가 다리가 불편하다 하여 내가 직접 네게 간 적이 있었다. 새까만 빛을 품은 총을 쥐고 손질하던 네게 나는 아프다더니 총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너는 다리가 아픈 것이지 상체는 멀쩡하기만 하다는 답을 되돌려 주었다. 네 손에서 매끄러운 윤기를 머금은 총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네 손에 어떤 것이든 부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커다랗고 뼈가 굵지만, 곧게 뻗은 손이 그 총을 쥐었을 때, 나는 네가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만일 남들이 듣는다면 이상하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로 그 때, 네가 빛나는 사람이라고 느꼈으니, 온전히 사랑에 빠진 것은 이 때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날 이후, 네 담당 주치의를 자처했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이의 치료도 하는 것이 응당 옳겠지만, 나는 네게 조금이나마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기를 원했으니까. 언더보스로 단기간에 오른 만큼, 너는 실력이 있는 자라 내가 처음에 볼 때와는 달리 다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실력자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인지 점점 남의 피를 묻혀올지언정 네 스스로의 피는 흘리거나, 뿌리고 다니지도 않았으나 네 체향이 다른 이의 피비린내에 묻혀버리는 것은 싫었다. 네가 달고 다니게 되는 부상은 찰과상에 타박상, 그리고 열상 정도로 제법 가벼운 것들뿐이라 이 험한 직업 속에서도 안심이 되고는 했다. 그리고 너는 여전히 오늘도, 딴 생각 말고 소독이나 하라며 나를 재촉했다. 내가 네게 품은 마음을 전할 리도 없고, 네가 눈치 채서도 안 되지만, 만일 눈치를 채게 된다 하더라도 혹시 이 마음이 네게 큰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될 것이라면, 나는 네 곁을 떠나야만 하게 될 테지. 네 몸에 난 상처를 통해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대는 이 소독약과도 같이, 그런 때가 온다면 이 마음을 닦아내는 것으로 단번에 모든 것이 치료된다면 좋으련만.

'2차창작 > 호오즈키의 냉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백여귀]아네모네  (0) 2015.06.22
[白鬼] 무제  (0) 2015.01.01
[白鬼] 이름  (0) 2014.10.08
[白鬼] 말로 하기는 어렵기에  (0) 2014.09.03
[白鬼] 무한과 유한의 온도 차  (0) 2014.08.13
Posted by 한 율 :

 

* 백귀, 하쿠호오

 

 

 문 틈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햇빛에 부스스 눈을 뜨자 허리에서 아릿한 고통이 올라왔다. 어젯밤 정사의 격렬함을 말해주는 듯, 온 몸으로 내달리는 격통에 호오즈키는 이를 악 물 수 밖에 없었다. 오니라서 망자나 인간과는 달리 고통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다고는 해도 아예 안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제 고통을 알기는 하는 건지 제 옆에 누워있는 사내는 평온하기만 해보였다. 쯧, 하고 혀를 차고는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길게 한 모금을 당기자 보랏빛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몇 천 년째 몸만 이어지는 관계는 서로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제게 달려들 줄은 몰랐다. 그리 좋아하는 여인들을 찾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평가에 의하면 자신과 몸을 섞기 시작하면서 늘 것같던 횟수는 제 예상과는 달리 되려 줄어들었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물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어느 누가 이 바보같을 정도로 태평한 얼굴을 보고 중국 요괴의 장이라 여길 것인가.

 

 깊게 들이 마신 담배는 폐 속 깊숙한 곳까지 연기를 가득 메우고, 자신의 정리를 정리하기에 알맞은 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매번 그와 몸을 섞고 나면 더 찾게 되는 담배였지만 그는 늘 매너없다며 불평을 해대고는 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이 백돼지 자식은 제가 어떤 심정으로 몸을 섞는지 제대로 알 지도 못할 텐데. 이 애매한 관계를 어느 쪽이든 정리 해야만 한다. 몇 천 년동안 이런 애매한 태도를 취해왔으니 이제는 그만둘 때도 되었다. 무엇보다 영원을 사는 그와는 달리 저는 언제가 될 지 몰라도 끝이 정해져 있는 유한한 자였다. 좋은 방향이 되든, 나쁜 방향이 되든, 끝은 맺어야 했다. 다 피운 담뱃재를 털어내고 뒤척이는 그를 발로 툭 밀어 떨어뜨렸다.

 

 " 일어나세요. 언제까지 잘 생각입니까, 백돼지. "

 " 아프잖아 이자식! 백돼지 아니라니까! "

 " 해가 중천입니다. 멍청이. "

 

 한참을 투덜이던 그는 해가 완전히 뜬 것에 아아, 하고 슬렁 넘겨버리더니 툭툭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제 기모노는 이미 다 갖춘 지 오래고, 몇 천년간 미뤘던 일을 하기로 한 이상 딱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몇 천년 동안 이어진 관계는 어쨌든 결말이 나야한다. 그리 판단을 끝내고는 할 말이 있다, 며 그를 부르자 그 또한 제게 할 말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며 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을 뱉었다.

 

" 좋아합니다. "

" 좋아해..엑?! "

 

 내뱉은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들을 거라 생각했지 같은 고백을 들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기에 저 또한 당혹스러웠다.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면 그가 여인들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 것 또한 납득이 되었다. 저와 몸을 섞고 있는데 굳이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을 테니까. 의외의 결과를 얻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뭘 봅니까 백돼지. 하고 툭 내뱉어 버리고는 침대에서 벗어났다. 제법 온기가 있던 곳에서 벗어나자 약간의 허전함을 느꼈다. 츳, 하고 혀를 차고는 의외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 뭐 좋습니다. 서로 같은 것을 알았으니 몸 말고 다른 것도 같이 해보죠. 언제 뭐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

 

 제 할 말만 해버리고 휙 나가버리는 호오즈키를 바라보던 백택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제 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은 꽤 되었지만 저 오니보다 오래 된 것일지는 모르겠다. 몸을 섞게 되면서 처음에는 그저 같이 잤기에 그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몸을 맞대고 그를 안으며 알게 된 것은 그의 몸 뿐이 아닌 다른 것도 원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부정했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오니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다니 신수로서 실격이라 생각했었다. 몇 번이고 부정했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잠깐 유혹해 놀던 여자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과 감정이 제게 확실히 하라, 는 듯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몇 천 년간 그저 몸으로만 이어지던 관계를 끝내고자 마음먹었는데, 하필이면 같은 날 같은 시에 똑같은 소리를 들을 줄이야.

 

 " 저 오니의 속은 모르겠단 말이지. "

 

 그 날 이후로 몸을 섞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소소한 분위기가 달라져갔다. 그 둘 사이에 흐르던 고압전류와도 같은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솜사탕....까지는 아니어도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에 아무리 둔한 자라도 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구나, 하고 눈치를 챌 정도였다. 알아도 말 하지 않는 자가 거의 전부였지만. 그 일을 계기 삼아 평범한 보통의 연인들과 같이 현세로 놀이공원 데이트도 나가고 저승에서도 데이트를 하고, 맛집이 생겼다 하면 찾아도 가고, 호오즈키가 은근히 단 것을 찾는다는 것을 알기에 철야에 물건을 받으러 오는 것을 놓치면 주문품을 갖다주며 그 속에 금어초 영양제와 단 것을 넣어 보내기도 하며 어딜봐도 연인, 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 변화를 주변인들은 그리 나쁘지 않게 보다 못해 반기기 시작했고, 이런 평범한 연인으로서의 일상은 그들 또한 원하던 바였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몇 천년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매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탐하기 바빴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긴다, 라고는 해도 결국 끝은 정사를 치루게 되고는 했으니까. 다만 한가지 특이한 것이라면 호오즈키는 평소 때에는 백돈, 백돼지, 썩은 신수, 등 전과 다를 바 없이 불러도 정사를 치루는 도중이나 정사의 끝에는 무의식적으로 백택, 이라고 제대로 부르고는 했다. 그 때마다 백택은 제 이름을 들으며 혀를 꾹 물고 절대 호오즈키의 이름을 부르는 법이 없었다. 몇 달이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자 호오즈키는 되면 좋고 안 되도 본전, 이라는 식으로 백택에게 담담히 말을 뱉어냈다.

 

 " 다른 때에는 별로 상관하지 않겠습니다만, 정사 때에는 제 이름을 불러도 별로 상관없지 않습니까. "

 " 다른 것은 다 되어도 그것만큼은 절대 안 돼. "

 

 생각 이상으로 단호하게 거절하는 백택을 보고 호오즈키는 눈을 가늘게 뜨다 이내 곧 알겠습니다, 하고 말았다. 뭐 평소와 딱히 달라지는 것이 없을 뿐이니 그리 아쉬울 것 또한 없었다. 그 얘기를 끝으로 어쩐지 평소보다 더욱 격렬한 것 같은 정사를 치루고 자신은 새벽에 제 처소로 돌아갔다. 호오즈키가 돌아가는 것을 완전히 확인하고 난 후에야 백택은 흐릿하게, 행여나 먼지처럼 흩어지고 연기처럼 사라질까봐 제 입속에서야 간신히 호오즈키, 하고 입 안에서 그의 이름을 굴려보았다. 그와의 정사를 치룰 때는 매번 제 신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낭패였다. 자신 또한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지만, 제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그런 혼란한 때에 그의 이름을 부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히 알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아무리 그의 부탁이라 할 지라도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제 신력이 통제가 안 되는 때에 그의 이름을 부르면 분명히 제법 강한 오니인 그라도 다칠 것이다. 자신은 절대 그것을 견딜 수 없을 테고 제 자신의 통제력을 두려워하게 되겠지. 그래서는 안 된다.

 

 " 좋아해, 호오즈키. "

 

 오로지 자신만이 있는 곳에서 제 신력을 억누른 채 간신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연기처럼 사라질까 무서워 아주 작게, 조용히. 네 이름은 네가 없는 곳에서만 부르게 될 테지. 아마도, 끝까지. 도원향은 제 마음을 알기는 하는건지 야속하게도 포근하고, 기분 좋은 날씨만을 내보였다. 다시금 호오즈키, 하고 나지막히 입 안에서 굴린 이름은, 달고도 쓴 맛이 났다.

 

 

 

Posted by 한 율 :

 

 

 * 백초. 하쿠초.

 

 

 

초 저게 또..!!”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자가 몇인데 지금!”

 

 또다. 아무리 제가 한 일이 아니라 해도 저들은 듣지 않는다. 아무도 보호해 줄 이 없는 고아로 배제되었다, 라는 것은 어느 누가 저를 범인으로 몰아가든지 간에 진실을 알든 모르든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주 좋은 명분이 되었다. 오늘도 그러한 이유로 매를 맞았고 간신히 벗어났다. 몸을 최대한 웅크려 어디 부러진 것 같지는 않지만 흙과 먼지투성이가 되고, 매를 맞아 멍이 든 몸은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벗어나려 해도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는 없지만, 도피처라 필요할 때면 사당을 찾고는 했다어차피 공물을 바치거나 하는 것은 또래의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한다고는 해도, 대부분 자신의 일이니 여기 있는다고 해서 의아하게 여길 이 또한 없을 테고. 자신은 그다지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다들 신이 있다고들 하니, 저 또한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신이 없으면 상관없지만, 만약 있다면 왜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텅 빈 사당에 대고 하는 제 목소리는 제법 크게 울렸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아니, 그러할 터였다. 며칠이고 몇 년이고 그래왔으니 그러할 터였는데, 의외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비록, 술에 절어서 혀가 꼬이고 불분명한 발음이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사람은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는 걸?”

 대체 이 자는 뭐하는 사람이기에 사당 안에 당당히 들어가 있는 걸까. 자신이 도망쳐 오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공물을 바치는 것도 제 일이었다. 그래서 도망 나오면서도 제 일은 꼬박 챙겨 갖고나와 공물을 바쳐놓았는데 사당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신이 아니라면 사람일 터였다. 귀신이나 그 외의 다른 것이라면 목소리조차 들릴 일이 있기는 하려나.

 

이곳은 사당입니다. 신을 모시는 자리입니다. 사람인지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신이 아니라면 호된 꼴을 당할 겁니다.”

이곳의 신은 엄밀히 얘기하면 신이 아니야. 뭐 인간인 너희들은 잘 모르려나.”

아무렴 어떻습니까. 저는 갑니다. 당신도 근 시일 내 이곳에 안 계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저 자는 정말 자신이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도 그저 고개만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걸리지만 그 걸리는 것이 뭔지 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정체가 뭐든지 간에 진짜 저 곳에는 없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몇 날 며칠에 걸쳐 사당에 공물을 바치는 일은 오로지 제 것이 되었다. 하지만 늘 공물을 바칠 뿐, 제 허기를 달랠 것은 쌀 한줌도 채 되지 못했다. 며칠이고 계속 되기 시작하는 가뭄 탓이었다. 그 시점부터 귀하디귀해진 쌀을 약간씩 모아 공물을 바쳤다. 여러 음식들이 공물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주먹밥과 당고가 그리 맛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신에게 바칠 음식은 신성한 것이라 하여 한낱 인간이 손대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마을의 사람들은 얘기하고는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아주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있었지만 자신은 대체 굶은 지 며칠 째가 되는 지 짐작조차 가지 않고 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로 만든 주먹밥과, 공들여 만들어 빛깔 좋고 모양이 예쁜 당고는 제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꼴깍,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훔쳐 먹게 되더라도 다른 이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어야 했다. 사당에 공물을 바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것이 어느 누구도 없고 자신뿐이었다. 그래도 바치는 공물인데 먹어도 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즈음, 사당 안에서 울리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치는 거라면서 먹는 거야? 헤에-.”

 

 한 번쯤 들은 목소리였다. 확연히 그 날과는 상태가 달라 못 알아들을 뻔 하긴 했지만, 숙취에 절어있던 자와 같은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저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분명히 서당을 나가는 쪽이 좋을 거라 얘기했는데, 듣지 못하는 걸까.

 

어차피 신이 존재한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에게 바칠 공물은 꼬박꼬박 만드는 데, 저는 굶은 지 며칠 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끼니를 걸렀습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니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에 화내진 않을 테죠. 무엇보다 그 정도에 화를 낸다면 쪼잔 하다고 생각합니다.”

 

 담담히, 물이 흘러가듯이 제 생각을 얘기하자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사당인데 들어가도 되나, 하고 앞에서 얼쩡거리고만 있자 괜찮으니 들어오라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와 그 안에 발을 들였다. 마을 사람들이 알면 또 어디 부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몰매를 맞겠지만 지금은 자신밖에 없으니 괜찮을 터였다. 머뭇거리다 들어선 사당 안에는 그 동안 바쳤던 공물의 빈 접시들과, 오늘 바친 음식을 먹고 있는, 도저히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비단 옷을 차려입은 사내가 안에서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광경에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다가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 사내가 건네는 것은 당고였다. 그것을 말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자, 말이 이어져왔다.

 

뭐해? 며칠이나 굶었다며. 이리 와서 이거 먹어. 원래는 아주 묽은 것, 이를 테면 죽 같은 것부터 먹여야 하지만 지금은 대신 할 만한 게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것에 손을 대면 신이 노여워한다고 마을 어른들이 그랬습니다.”

그런 소릴 해? 그럴 리가 있나.”

 

 제가 대답을 마저 하기도 전에 입 안으로 쑥 들어오는 당고에 당황했지만 며칠 간 굶은 본능은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새 정신없이 그것을 먹고 있었다. 쫀득하고 찰기 있는 음식을 입에 대는 것이 얼마만이더라. 꾹꾹 씹어 삼키자 하나 더 건네는 손에 들린 것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공물로 바친 당고를 싹 먹어치우자 그제야 그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금 이어져왔다.

 

여기로 종종 놀러오면 또 네게 줄게.”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런 화려한 옷을 차려 입고 있는 것을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사람 자체가 아니지만 말이야. 신수라고? 대륙에서 건너왔어. 좀 시끄러워서.”

별로 믿기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믿어는 드리겠습니다.”

기왕이면 제대로 믿어줬음 좋겠는데.”

 

 그 날부터 며칠을 걸러서 한 번, 한 달에 한 번, 점점 먹을 것이 부족해져오자 공물을 바치는 횟수 또한 줄어들었다. 몇 날을 걸러서 찾아가던지 간에 그 사내는 제게 당고를 물려주고는 했다. 딱히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 날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그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걸렸다. 딱히 자신을 해코지 하지도 않고, 제게 무언가를 많이 요구하지도 않고, 물어보는 것이라고는 제가 무엇을 하는 지 정도였으니 그다지 나쁠 것도 없었기에 그냥 그대로 지내고는 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공물을 바치는 날이 되어 오늘도 제가 공물을 바치고 사당 안을 기웃거리는데, 흔적조차 없이 말끔해진 안에 그저 갔나보다, 라는 생각만을 지니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제 시야를 가득 메우는 새하얀 색의 옷으로 감싸인 사내는, 화려하고, 아리따웠다.

 

그 동안 잘 먹었어, . 네 마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내 관할이 아니야. 잘 지내렴.”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네고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진 사내를 바라보다 계속 걸리던 기시감이 무엇인지 알아채고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저 사내에게 자신이 불리는 이름을 가르쳐 준 기억이 없었다. 딱히 믿을만한 증거도, 그 무엇도 없지만…….

 

어쩌면, 본인이 얘기한 대로 진짜 신수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는 공허했고, 텅 빈 사당과 서늘한 한기만이 이제 정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제 입안에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물려주고 간 당고의 쫀득한 감촉과 혀에 감겨오는 달큰한 맛만이 감겨들었다

 

 

 

'2차창작 > 전력 60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오즈키」+「꽃」  (0) 2014.08.24
Posted by 한 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