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초. 하쿠초.

 

 

 

초 저게 또..!!”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자가 몇인데 지금!”

 

 또다. 아무리 제가 한 일이 아니라 해도 저들은 듣지 않는다. 아무도 보호해 줄 이 없는 고아로 배제되었다, 라는 것은 어느 누가 저를 범인으로 몰아가든지 간에 진실을 알든 모르든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아주 좋은 명분이 되었다. 오늘도 그러한 이유로 매를 맞았고 간신히 벗어났다. 몸을 최대한 웅크려 어디 부러진 것 같지는 않지만 흙과 먼지투성이가 되고, 매를 맞아 멍이 든 몸은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벗어나려 해도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는 없지만, 도피처라 필요할 때면 사당을 찾고는 했다어차피 공물을 바치거나 하는 것은 또래의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한다고는 해도, 대부분 자신의 일이니 여기 있는다고 해서 의아하게 여길 이 또한 없을 테고. 자신은 그다지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다들 신이 있다고들 하니, 저 또한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신이 없으면 상관없지만, 만약 있다면 왜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텅 빈 사당에 대고 하는 제 목소리는 제법 크게 울렸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아니, 그러할 터였다. 며칠이고 몇 년이고 그래왔으니 그러할 터였는데, 의외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비록, 술에 절어서 혀가 꼬이고 불분명한 발음이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사람은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는 걸?”

 대체 이 자는 뭐하는 사람이기에 사당 안에 당당히 들어가 있는 걸까. 자신이 도망쳐 오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공물을 바치는 것도 제 일이었다. 그래서 도망 나오면서도 제 일은 꼬박 챙겨 갖고나와 공물을 바쳐놓았는데 사당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신이 아니라면 사람일 터였다. 귀신이나 그 외의 다른 것이라면 목소리조차 들릴 일이 있기는 하려나.

 

이곳은 사당입니다. 신을 모시는 자리입니다. 사람인지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신이 아니라면 호된 꼴을 당할 겁니다.”

이곳의 신은 엄밀히 얘기하면 신이 아니야. 뭐 인간인 너희들은 잘 모르려나.”

아무렴 어떻습니까. 저는 갑니다. 당신도 근 시일 내 이곳에 안 계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저 자는 정말 자신이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도 그저 고개만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걸리지만 그 걸리는 것이 뭔지 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정체가 뭐든지 간에 진짜 저 곳에는 없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몇 날 며칠에 걸쳐 사당에 공물을 바치는 일은 오로지 제 것이 되었다. 하지만 늘 공물을 바칠 뿐, 제 허기를 달랠 것은 쌀 한줌도 채 되지 못했다. 며칠이고 계속 되기 시작하는 가뭄 탓이었다. 그 시점부터 귀하디귀해진 쌀을 약간씩 모아 공물을 바쳤다. 여러 음식들이 공물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주먹밥과 당고가 그리 맛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신에게 바칠 음식은 신성한 것이라 하여 한낱 인간이 손대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마을의 사람들은 얘기하고는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아주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있었지만 자신은 대체 굶은 지 며칠 째가 되는 지 짐작조차 가지 않고 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로 만든 주먹밥과, 공들여 만들어 빛깔 좋고 모양이 예쁜 당고는 제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꼴깍,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훔쳐 먹게 되더라도 다른 이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어야 했다. 사당에 공물을 바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것이 어느 누구도 없고 자신뿐이었다. 그래도 바치는 공물인데 먹어도 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즈음, 사당 안에서 울리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치는 거라면서 먹는 거야? 헤에-.”

 

 한 번쯤 들은 목소리였다. 확연히 그 날과는 상태가 달라 못 알아들을 뻔 하긴 했지만, 숙취에 절어있던 자와 같은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저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분명히 서당을 나가는 쪽이 좋을 거라 얘기했는데, 듣지 못하는 걸까.

 

어차피 신이 존재한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에게 바칠 공물은 꼬박꼬박 만드는 데, 저는 굶은 지 며칠 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끼니를 걸렀습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니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에 화내진 않을 테죠. 무엇보다 그 정도에 화를 낸다면 쪼잔 하다고 생각합니다.”

 

 담담히, 물이 흘러가듯이 제 생각을 얘기하자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사당인데 들어가도 되나, 하고 앞에서 얼쩡거리고만 있자 괜찮으니 들어오라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와 그 안에 발을 들였다. 마을 사람들이 알면 또 어디 부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몰매를 맞겠지만 지금은 자신밖에 없으니 괜찮을 터였다. 머뭇거리다 들어선 사당 안에는 그 동안 바쳤던 공물의 빈 접시들과, 오늘 바친 음식을 먹고 있는, 도저히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비단 옷을 차려입은 사내가 안에서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광경에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다가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 사내가 건네는 것은 당고였다. 그것을 말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자, 말이 이어져왔다.

 

뭐해? 며칠이나 굶었다며. 이리 와서 이거 먹어. 원래는 아주 묽은 것, 이를 테면 죽 같은 것부터 먹여야 하지만 지금은 대신 할 만한 게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것에 손을 대면 신이 노여워한다고 마을 어른들이 그랬습니다.”

그런 소릴 해? 그럴 리가 있나.”

 

 제가 대답을 마저 하기도 전에 입 안으로 쑥 들어오는 당고에 당황했지만 며칠 간 굶은 본능은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새 정신없이 그것을 먹고 있었다. 쫀득하고 찰기 있는 음식을 입에 대는 것이 얼마만이더라. 꾹꾹 씹어 삼키자 하나 더 건네는 손에 들린 것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공물로 바친 당고를 싹 먹어치우자 그제야 그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금 이어져왔다.

 

여기로 종종 놀러오면 또 네게 줄게.”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런 화려한 옷을 차려 입고 있는 것을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사람 자체가 아니지만 말이야. 신수라고? 대륙에서 건너왔어. 좀 시끄러워서.”

별로 믿기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믿어는 드리겠습니다.”

기왕이면 제대로 믿어줬음 좋겠는데.”

 

 그 날부터 며칠을 걸러서 한 번, 한 달에 한 번, 점점 먹을 것이 부족해져오자 공물을 바치는 횟수 또한 줄어들었다. 몇 날을 걸러서 찾아가던지 간에 그 사내는 제게 당고를 물려주고는 했다. 딱히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 날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그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걸렸다. 딱히 자신을 해코지 하지도 않고, 제게 무언가를 많이 요구하지도 않고, 물어보는 것이라고는 제가 무엇을 하는 지 정도였으니 그다지 나쁠 것도 없었기에 그냥 그대로 지내고는 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공물을 바치는 날이 되어 오늘도 제가 공물을 바치고 사당 안을 기웃거리는데, 흔적조차 없이 말끔해진 안에 그저 갔나보다, 라는 생각만을 지니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제 시야를 가득 메우는 새하얀 색의 옷으로 감싸인 사내는, 화려하고, 아리따웠다.

 

그 동안 잘 먹었어, . 네 마을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내 관할이 아니야. 잘 지내렴.”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네고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진 사내를 바라보다 계속 걸리던 기시감이 무엇인지 알아채고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저 사내에게 자신이 불리는 이름을 가르쳐 준 기억이 없었다. 딱히 믿을만한 증거도, 그 무엇도 없지만…….

 

어쩌면, 본인이 얘기한 대로 진짜 신수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는 공허했고, 텅 빈 사당과 서늘한 한기만이 이제 정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제 입안에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물려주고 간 당고의 쫀득한 감촉과 혀에 감겨오는 달큰한 맛만이 감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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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 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