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귀, 하쿠호오

 

 

 문 틈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햇빛에 부스스 눈을 뜨자 허리에서 아릿한 고통이 올라왔다. 어젯밤 정사의 격렬함을 말해주는 듯, 온 몸으로 내달리는 격통에 호오즈키는 이를 악 물 수 밖에 없었다. 오니라서 망자나 인간과는 달리 고통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다고는 해도 아예 안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제 고통을 알기는 하는 건지 제 옆에 누워있는 사내는 평온하기만 해보였다. 쯧, 하고 혀를 차고는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길게 한 모금을 당기자 보랏빛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몇 천 년째 몸만 이어지는 관계는 서로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제게 달려들 줄은 몰랐다. 그리 좋아하는 여인들을 찾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평가에 의하면 자신과 몸을 섞기 시작하면서 늘 것같던 횟수는 제 예상과는 달리 되려 줄어들었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물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어느 누가 이 바보같을 정도로 태평한 얼굴을 보고 중국 요괴의 장이라 여길 것인가.

 

 깊게 들이 마신 담배는 폐 속 깊숙한 곳까지 연기를 가득 메우고, 자신의 정리를 정리하기에 알맞은 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매번 그와 몸을 섞고 나면 더 찾게 되는 담배였지만 그는 늘 매너없다며 불평을 해대고는 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이 백돼지 자식은 제가 어떤 심정으로 몸을 섞는지 제대로 알 지도 못할 텐데. 이 애매한 관계를 어느 쪽이든 정리 해야만 한다. 몇 천 년동안 이런 애매한 태도를 취해왔으니 이제는 그만둘 때도 되었다. 무엇보다 영원을 사는 그와는 달리 저는 언제가 될 지 몰라도 끝이 정해져 있는 유한한 자였다. 좋은 방향이 되든, 나쁜 방향이 되든, 끝은 맺어야 했다. 다 피운 담뱃재를 털어내고 뒤척이는 그를 발로 툭 밀어 떨어뜨렸다.

 

 " 일어나세요. 언제까지 잘 생각입니까, 백돼지. "

 " 아프잖아 이자식! 백돼지 아니라니까! "

 " 해가 중천입니다. 멍청이. "

 

 한참을 투덜이던 그는 해가 완전히 뜬 것에 아아, 하고 슬렁 넘겨버리더니 툭툭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제 기모노는 이미 다 갖춘 지 오래고, 몇 천년간 미뤘던 일을 하기로 한 이상 딱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몇 천년 동안 이어진 관계는 어쨌든 결말이 나야한다. 그리 판단을 끝내고는 할 말이 있다, 며 그를 부르자 그 또한 제게 할 말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며 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을 뱉었다.

 

" 좋아합니다. "

" 좋아해..엑?! "

 

 내뱉은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들을 거라 생각했지 같은 고백을 들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기에 저 또한 당혹스러웠다.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면 그가 여인들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 것 또한 납득이 되었다. 저와 몸을 섞고 있는데 굳이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을 테니까. 의외의 결과를 얻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뭘 봅니까 백돼지. 하고 툭 내뱉어 버리고는 침대에서 벗어났다. 제법 온기가 있던 곳에서 벗어나자 약간의 허전함을 느꼈다. 츳, 하고 혀를 차고는 의외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 뭐 좋습니다. 서로 같은 것을 알았으니 몸 말고 다른 것도 같이 해보죠. 언제 뭐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

 

 제 할 말만 해버리고 휙 나가버리는 호오즈키를 바라보던 백택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제 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은 꽤 되었지만 저 오니보다 오래 된 것일지는 모르겠다. 몸을 섞게 되면서 처음에는 그저 같이 잤기에 그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몸을 맞대고 그를 안으며 알게 된 것은 그의 몸 뿐이 아닌 다른 것도 원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부정했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오니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다니 신수로서 실격이라 생각했었다. 몇 번이고 부정했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잠깐 유혹해 놀던 여자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과 감정이 제게 확실히 하라, 는 듯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몇 천 년간 그저 몸으로만 이어지던 관계를 끝내고자 마음먹었는데, 하필이면 같은 날 같은 시에 똑같은 소리를 들을 줄이야.

 

 " 저 오니의 속은 모르겠단 말이지. "

 

 그 날 이후로 몸을 섞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소소한 분위기가 달라져갔다. 그 둘 사이에 흐르던 고압전류와도 같은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솜사탕....까지는 아니어도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에 아무리 둔한 자라도 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구나, 하고 눈치를 챌 정도였다. 알아도 말 하지 않는 자가 거의 전부였지만. 그 일을 계기 삼아 평범한 보통의 연인들과 같이 현세로 놀이공원 데이트도 나가고 저승에서도 데이트를 하고, 맛집이 생겼다 하면 찾아도 가고, 호오즈키가 은근히 단 것을 찾는다는 것을 알기에 철야에 물건을 받으러 오는 것을 놓치면 주문품을 갖다주며 그 속에 금어초 영양제와 단 것을 넣어 보내기도 하며 어딜봐도 연인, 이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 변화를 주변인들은 그리 나쁘지 않게 보다 못해 반기기 시작했고, 이런 평범한 연인으로서의 일상은 그들 또한 원하던 바였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몇 천년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매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탐하기 바빴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긴다, 라고는 해도 결국 끝은 정사를 치루게 되고는 했으니까. 다만 한가지 특이한 것이라면 호오즈키는 평소 때에는 백돈, 백돼지, 썩은 신수, 등 전과 다를 바 없이 불러도 정사를 치루는 도중이나 정사의 끝에는 무의식적으로 백택, 이라고 제대로 부르고는 했다. 그 때마다 백택은 제 이름을 들으며 혀를 꾹 물고 절대 호오즈키의 이름을 부르는 법이 없었다. 몇 달이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자 호오즈키는 되면 좋고 안 되도 본전, 이라는 식으로 백택에게 담담히 말을 뱉어냈다.

 

 " 다른 때에는 별로 상관하지 않겠습니다만, 정사 때에는 제 이름을 불러도 별로 상관없지 않습니까. "

 " 다른 것은 다 되어도 그것만큼은 절대 안 돼. "

 

 생각 이상으로 단호하게 거절하는 백택을 보고 호오즈키는 눈을 가늘게 뜨다 이내 곧 알겠습니다, 하고 말았다. 뭐 평소와 딱히 달라지는 것이 없을 뿐이니 그리 아쉬울 것 또한 없었다. 그 얘기를 끝으로 어쩐지 평소보다 더욱 격렬한 것 같은 정사를 치루고 자신은 새벽에 제 처소로 돌아갔다. 호오즈키가 돌아가는 것을 완전히 확인하고 난 후에야 백택은 흐릿하게, 행여나 먼지처럼 흩어지고 연기처럼 사라질까봐 제 입속에서야 간신히 호오즈키, 하고 입 안에서 그의 이름을 굴려보았다. 그와의 정사를 치룰 때는 매번 제 신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낭패였다. 자신 또한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지만, 제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그런 혼란한 때에 그의 이름을 부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히 알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아무리 그의 부탁이라 할 지라도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제 신력이 통제가 안 되는 때에 그의 이름을 부르면 분명히 제법 강한 오니인 그라도 다칠 것이다. 자신은 절대 그것을 견딜 수 없을 테고 제 자신의 통제력을 두려워하게 되겠지. 그래서는 안 된다.

 

 " 좋아해, 호오즈키. "

 

 오로지 자신만이 있는 곳에서 제 신력을 억누른 채 간신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연기처럼 사라질까 무서워 아주 작게, 조용히. 네 이름은 네가 없는 곳에서만 부르게 될 테지. 아마도, 끝까지. 도원향은 제 마음을 알기는 하는건지 야속하게도 포근하고, 기분 좋은 날씨만을 내보였다. 다시금 호오즈키, 하고 나지막히 입 안에서 굴린 이름은, 달고도 쓴 맛이 났다.

 

 

 

Posted by 한 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