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붕주의

 

 

 " 아 백택군, 조금 할 얘기가 있는데... "

​ 약을 전해주고 도원향으로 돌아가려던 자신을 염라가 불러세웠다. 그리고나서 자신에게 한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질거라고 믿고 있지 않았던 탓이겠지. 알고 있었다고는 해도 믿고 싶지는 않았기에, 절로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드는 아릿한 느낌에 조금 힘을 풀기는 했지만 그 욱신거리는 감각은 남아서 자신을 괴롭혔다. 달큰하고 간질거리는 복숭아 향이 가득한 도원향에 돌아와서는 그가 해준 말을 곱씹었다. 분명히 살랑거리는 바람과 적당한 온도, 기분좋은 향이 가득한 말 그대로 천국이건만, 그가 해 준 한 문장의 말이 뭐라고, 그 말을 곱씹을 때마다 입 안이 썼다.

 호오즈키군이 전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말이지..​ 라니,

 그녀석은 오니고 몇 천년 이상 그 존재로 있었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기본 바탕이 인간, 이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던 제 탓이었다. 약초 냄새가 가득한 극락만월의 안에 앉은 채 멍하니 있자니 타오타로군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방긋 웃으며 일에 집중했다. 아무리 일을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자신이라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분명 자신이 못 버틸 것이 뻔했기에. 몇 천년을 살아온 자신이라고는 해도 이별의 순간이라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었다. 그것이 더더욱, 최근에서야 좋아한다-, 고 자각한 자라면. 마주 칠 때마다 피터지게 싸웠고 온갖 상스러운 욕설도 입에 담았지만,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호오즈키를 보고 있자면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깟 놈이 여자한테 인기가 많아서, 일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여자 한정이 아닌 다른 놈으로 퍼져가면, 그거야 뭐 누구라도 질투라고 알 수 있을테지.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어서 괜스레 더 짜증을 냈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달라지지 않는 감정을 껴안은 채 계속 있다보면 결국 인정해버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녀석이 전생한다, 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귓가에서 그 한 마디만이 계속 웅웅거렸다. 정신을 날려먹지 않기 위해서 몇날 며칠을 밤을 새가며 일에 집중했다. 타오타로군이 그러다 몸이 망가진다며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자신을 추스릴 정신이 없었다.

 며칠이나 흘러갔을까, 일로 인해 찾은 염라청에는 그녀석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전혀 모르는, 새로운 얼굴. 아니 아예 모르는 얼굴은 아닌가..? 헷갈린다.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지금의 지옥 제 1 보좌관은 그녀석이 아니니까. 몇 번이고 주위를 둘러봐도 그녀석만이 없다. 약재를 건네주고 돌아가려던 찰나, 염라가 호오즈키가 전생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을 던졌지만, 그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모든 걸 타오타로군에게 떠맡긴 채로 현세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현세의 체감시간과 저승의 체감시간이 다르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그렇게 다르지는 않으니까. 몇 번이고 찾고, 또 찾았다. 내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일을 하려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십 년? 이십 년? 백 년? 아니, 숫자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게는 숫자와 같은 유한의 개념은 의미가 없으니까.

 몇 번이고 현세를 이 잡듯이 뒤지고,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샅샅이 찾아서 간신히 발견한 호오즈키는, 이미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제법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다. 빼앗고 싶다. 저 여인의 자리가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 검붉은 질투의 감정이 일렁였지만 어쨌거나 자신은 신수였다. 인간에게 위해를 끼치는 짓따위는 할 수 없었고 해서도 안 됐다. 그랬다가는 죽는 것이 더 나을 정도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내게 되므로. 이번 생은 조용히 지켜보자, 전생이라는 시스템이 있는 이상 다시 볼 수 있을거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마도, 정말 희박한 희망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곁에 제가 있을 수 있게 될 날이 올 지도 모르니까.

 그가 첫 번째로 전생한 삶은 끝까지 지켜봤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세번째, 네번째, 두 자리 숫자가 넘어가고 몇 십, 몇 백, 몇 천년의 시간이 흘렀다. 몇 번이고 헤매고 찾아내는 순간들의 반복이었다. ​어떤 때에는 여자로 전생해 어떤 필부의 아내였고, 어떤 때에는 남자로서 제법 성공적인 삶을, 또 어떤 때에는 제 수명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몇 번이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찾았는지 모르겠다. 늘 마지막이 마지막이 될 수는 없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무한한 삶을 지닌 자신이라도 조금 지쳐버렸다. 처음부터 너를 좋아한다고 순순히 인정했으면 이런 괴로움따위는 없었을 지도 모르는데. 부글거리고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려 술을 샀다. 선이 고운 매끄러운 도자기병에 담긴 술의 향은 분명 향긋했지만, 들이키면 들이킬수록 열만 올랐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마지막이다. 이번 생에서마저 너를 놓쳐버린다면, 나는 그 이상 너를 놓치는 것을 버틸 자신이 없으니..

 시끄러운 현세의 소음을 버티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테지, 머리가 웅웅거릴 정도의 온갖 잡음들과 매캐하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답답한 공기는 네 기운을 읽어내는 데 늘 방해였으니. 정신을 조금 집중하고 네 기운을 쫓았다. 너를 찾아서, 마음만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네가 어떤 대답을 내게 해주던 간에 이대로 마음에 담아둔 채로 무거운 감정을 지닌 채 너를 보기는 싫었다. 그래서 어질거리고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몸뚱이를 이끌고 너를 찾았다. 나에게는 찰나지만 유한자에게는 꽤 긴 시간을 지나서 간신히 너를 붙잡았다. 밤하늘과 같은 새까만 흑발,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익숙한 너의 기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찾은 그의 모습은 예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한 가지 다른 것이라면, 저승의 입구에서 만난 것이려나. 마지막, 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마지막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삐죽이 올라온 이마의 뿔은 대체 무슨 일인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해야할 말만큼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어서와, 호오즈키. "

 몇 십, 몇 백, 몇 천년의 시간이 흘러 간신히 붙잡은 너를 놓고 싶지는 않다. 분명 이런 일이 또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네가 존재하는 시간 내내 네 곁에서 있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다정한 존재로 네 곁에 있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처음으로 내 진심을 네게 전한다. 

 " 좋아해, 호오즈키. 내가 존재하는 동안에. "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는 내게는 가장 좋은 영원을 약속하는 방법. 네가 어떤 대답을 해 줄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의 대답이 되건간에 나는 너를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사랑해.

 이 말은 조금 더 아껴두는 걸로.

'2차창작 > 호오즈키의 냉철' 카테고리의 다른 글

[白鬼] 이름  (0) 2014.10.08
[白鬼] 말로 하기는 어렵기에  (0) 2014.09.03
[白丁]어느 옛날의 이야기  (0) 2014.08.13
[白鬼] 붉은 실이 검게 변할 때  (0) 2014.08.13
[白丁]늦어서 미안해  (0) 2014.08.13
Posted by 한 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