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스메라기 야쿠모x시모츠키 쿄 계약연애.

야쿠모→쿄인 상태에서 쿄→야쿠모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경우. 진심루트. 현재 아직 자각 없음.

 

 

 

 사람이라는 것은, 간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우선인 법이다.

 

 시모츠키 가에서 태어나 차기 당주로 키워진 현재까지도, 그 사실 하나만큼은 어릴 적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 자체도 그 자체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깨끗하고 정갈한, 어딜 봐도 돈 몇 푼으로는 어림없을 외관과 조금씩 담겨 나오는 고급 식재료로 만든 요리들. 귀한 이를 대접하기에 안성맞춤인 고급 요릿집이라는 티가 풀풀 났다. 파티션으로 나누어진 바깥과는 차단된 공간과, 좌식의 공간에 의자를 놓아 조금 덜 불편하게 만든 자리. 상대가 자신이 '시모츠키'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 자체는 이 자리로 초대받은 시점에서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바깥에서 '퇴마사' 라는 직업 자체는 멸시하는 자들이 넘쳤으나 이형과 요괴에게 시달린 이들에게는 탐탁치 않아도 실력있는 자를 찾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느 날, 제 집안으로 날아들어온 초대장 자체가 달갑지 만은 않았으나, 차기 당주로서 해야할 일이라는 소리에 한숨을 길게 뱉어내고 차를 준비시켰다. 그래서 온 곳이 현재, 지금의 이 자리였다.

 

 "그래서, 차기 당주께서 가장 실력있다 해 모셨습니다만..."

 "그렇게 오래 되었다면, 저 말고도 다른 곳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을 소멸시키길 원합니다."

 

 은근한 침묵과 정적이 흘렀다. '다른 곳' 이라고 흘린 이유는 단순한 얘기였다. 이 세계는, 자신 말고도 뛰어난 이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제 자신이 다른 이들을 전부 잡아먹고 태어났다. 고 불릴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다 해도, 완전무결한 최강자는 없는 법이니까. 이 세계에 속한 이들이라면, 언제고 한 번은 들었을 이름. '스메라기.' 하긴, 그 집안은 소멸과는 거리가 멀지. 사사건건 자신과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고 부딪히는 이였다. 나이차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당신과는 어디서부터 얽혔을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니면 그 이후에 자신과 일이 겹쳤을 때부터?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현 상황은 자신에게 알맞은 의뢰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제 앞에 앉은 사내는 정갈하다 못해 딱딱해 보일 정도로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목 끝까지 채운 단추와 단정히 맨 넥타이, 흐트러짐 없는 옷 매무새의 정석과도 같았다. 제 앞에 놓인 찻잔에서 피어오르던 김이 사라지고, 조용한 정적만이 무겁게 공기를 눌렀다.

 

 "알겠습니다. 받아들이도록 하죠."

 

 어차피, 자신은 이 의뢰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가 '사람'인 이상은 결코. 의뢰 내용 자체는 단순했다. 집안 구성원 전부가 하루가 멀다 하게 번갈아가며 크고 작게 다치는 데, 그게 원인 규명을 할 수 없고 꼭 무언가를 만진 후에 일어난다는 것.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해보이기에 원인과 결과를 규명할 수 없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상에서 그치는 정도일 뿐이지 아직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 사람이 없다는 것. 사람이 다치는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상세한 내용을 듣고 보니 그냥 우연한 사고, 로 처리하기에는 찜찜하기 그지없는 얘기들이 많았다. '만졌다.' 라는 것은 그 물건이 매개체라는 것이고,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겠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젖혔다. 하. 담배피우고 싶어. 일렁, 치밀어 오른 짜증을 꾹꾹 내리누르고서, 먼저 상대를 내보냈다. 간략하게 적힌 의뢰의 내용과, 의뢰인의 서명,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자신의 서명이 적힌 계약서를 톡, 톡. 손 끝으로 건들다 손바닥으로 종이를 누르고 나직하게 말을 읊었다. 순식간에 새로 변한 종이가 제 본가의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슬슬 일어날까, 싶어 식은 찻잔을 내버려두고 한 쪽에 걸어두었던 제 겉옷을 집어 걸쳤다. 탁탁 털어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서 일어서 파티션을 열려던 참이었다. 그 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 '말'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진작 그 자리를 벗어나고도 남았을 텐데.

 

 "미신에 기대야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말이지."

 "해결만 되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가시죠."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의뢰를 '부탁했던' 이의 목소리였다.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미신취급이라니. 몇 번이고 겪었던 일이었으나 늘 욱신, 하고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늘 이런 식이었다. 이 바닥에서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진 이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 자신이었다. 늘 이런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사람을 버리지 못했다. 매번 이렇게 다치면서도 사람을 놓지 못하는 자신에게, 그는 자신을 어리석다 얘기했지. 그러나 당신도 분명 알고 있을 터였다. 자신과 당신은 닮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사람에게서 받은 애정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버릴 수가 없다는 그 사실도. 그래도, 이번엔 좀 힘겹다. 당신이 나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것은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쌓이고 쌓인 세월들이 이번의 말 하나로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늘, 사람에게서 애정을 갈구하고 그들의 안식을 바라는 자신으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여전한 '미신' 취급이라. 이렇게까지 망가져버린 때는, 반쯤 오기로 시작한 당신과의 연애놀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명목상으로 이루어진 연인이라 할 지라도, 최소한 쫓아내지는 않을 터였으니.

 

 대기시킨 차를 불러, 당신의 저택으로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당신은 요즘 자신에게 묘하게 물러진 때였으니. 처음에는 제 착각이라 생각했다. 요괴의 놀음에라도 취한 것일 거라고. 아무리 당신이 자신 이상의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근본적으로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고, 당신을 홀리기에는 그것들의 연륜이 더 클 테니까.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나를 원하고 있었다. 눈치채는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사건건 부딪힌다고 해도, 당신 또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당신이 손을 내밀면 결코 내치지 못할 것을 당신 또한 알고 있을 터였다.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한 당신의 집에서 사람이 나오고, 달가워 하지 않았으나 자신을 안으로 들여 보냈다. 긴 복도를 따라 당신의 방에 도착하자, 일렁이는 불빛과 밀린 일을 보고 있는 당신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 나 좋아하지? 시간 좀 내."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에게 툭툭 뱉는 말버릇이 건방지다고, 세간에서는 그리 칭할 수도 있었으나, 이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 '스메라기'가의 가주, '스메라기 야쿠모'와 '시모츠키'가의 차기 당주인 자신. '시모츠키 쿄'의 관계는 유명했으니까. 이런 관계가 될 줄은 자신도, 그도 몰랐을 테니 더더욱. 자신은 자신을 좋아하는 그를 쉬이 눈치챘고, 이런 상황이 생길 때 그를 찾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왜였을까, 발밑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이가 당신이었다. 들고 온 술병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짧게 내뱉은 한 마디는, 당신의 손이 서류를 내려놓게 하기에 충분했던 듯 싶다.

 

 "술 상대나 해줘."

 

 그리 긴 말은 없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생각보다 당신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는 것과, 그 날의 달이 미치도록 밝았다는 것. 그러니까 이건-

 

 아무튼,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Posted by 한 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