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쿠호오입니다. BL소재가 있으므로 거부감있으신 분은 피해주세요.
" 미안해, 백택군. 좀 바빠서 말이지. "
" 별로 상관은 없지만. 완벽하게 처리해서 속을 긁는 쪽이 더 좋기도 하고. "
붉은 색이 주를 이루는 염라청 안에 이질적일정도로 하얗고 홀연히 다른 기운을 내뿜는 남자가 있었다. 담담한 대화, 라고 보면 그리 볼 수도 있겠지만 새빨갛고 뜨거운, 화려한 불꽃과도 같은 곳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사내였다. 백택, 이라고 불린 남자는 겉모습은 청년이었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위압감은 누구에게 비견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티가 나지 않고 가벼워보이는 인상이라고는 해도 연륜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묻히지 않는 법이다. 허나 그 사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는 원래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요청받아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이 사내는 지금쯤 화류가에서 고운 분을 바른 여인네들과 정성들여 빚어낸 좋은 술들을 마시며 화류가를 어정대고 있을 터였지만, 이 염라대왕의 제1보좌관인 호오즈키가 앓아누운 탓에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 자를 찾아서 그 백택에게 부탁한 것이다. 백택은 백택대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빚을 만들어두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라 여겨서 돕고 있는 것이었다. 제 키보다도 높게 쌓인 묵직한 문서들을 바라보며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대체 그 오니는 뭔 수로 이걸 하고 있는 거지, 싶을 정도의 방대한 양이었다. 쯔, 이러니 아무리 인간과 달리 튼튼한 몸뚱이라지만 고장이 나겠지. 평소의 자신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붓을 들고 문서를 정리해냈다. 순식간에 도로 높아진 높이에 쯧, 하고 혀를 찼다. 어깨를 돌리자 우드득 하고 뼈가 다시 맞춰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 대체 그 아이는 왜 무리하는건지 모르겠어. 안 그래도 일 많으면서 말이지.. "
" 그런 말을 나한테 해도, 딱히 뭐라 해줄 말은 없는데. 일은 끝내줬으니 난 가볼게, 남은 시간이라도 예쁜 아이들과 지내겠어. 그리고 저 위에 놓인 건 그 녀석이 직접 봐야하는 것이니 건들지 말고. "
마지막 문서위에 살포시 그려놓은 마오하오와 붉은 비단으로 감싸인 종이 위에 놓인, 언뜻 봐서는 구분조차 제대로 가지 않는 새빨간 장미꽃 한 송이. 도원향으로 가지 않고 중합지옥으로 옮긴 발걸음은 가벼운 동시에 그 녀석이 알기나 할까, 싶은 생각이 같이 들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이라는 심정으로 내려놓고 온 것이기는 하지만 모른다면 조금은-, 씁쓸할 지도 모르겠다. 아아 잊자 잊어, 지금 그 오니녀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자연스레 찾은 중합지옥의 기루 여우아씨에서 달기를 불러내었다. 고운 얼굴과 화려한 비단자락에 감싸인 적당히 좋은 몸매는 자신을 동하게 하기 충분했다. 달큰한 그녀들의 체향과 곱게 화장한 얼굴, 길고 쭉 뻗은 손가락으로 먹여주는 술은 천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여인의 품에 안겨 늘어져있자니 지옥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 더욱 천국과 같은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을 그녀들과 보내고 돌아온 도원향은 지옥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분명히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은 이 곳이건만, 화려한 불꽃과도 같이 강인한 인상을 심는 지옥과는 달리 부드럽고 포근하게, 살포시 감싸안는 듯한 수채화와도 같은 인상을 주는 곳. 약재의 냄새와 꽃 내음이 섞여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아니, 그럴 터였다. 제 옆을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스쳐지나간 쇠몽둥이만 아니었다면.
" 무슨 짓이야, 이 오니!!!"
" 오니입니다만. 제 대신 업무를 해주신건 일단은 감사드리겠지만 문서에 저주 그려놓지 마시죠. "
" 사랑스러운 마오하오하오쨩한테 무슨 소리래!! "
완전히 멀쩡해진 것을 보니 정말로 단순한 과로였던 것 뿐이군.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저 오니가 진짜로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분명 자신보다 한참 어리건만, 자신을 향한 태도는 정이라고는 1mg 조차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 하고 울리는 바리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진 않았지만 하는 말은 줄곧 듣고 있었기에 그 오니의 물음에 단 한 가지 대답을 해주었다.
" 그 꽃의 의미가 궁금하면 여인들에게 물어보지 그래? 잘 알걸."
저 오니의 손이 자연스레 쇠몽둥이로 가길래 저도 모르게 약재 발주한 건 너지 않냐며 쫓아냈다. 자신 또한 지금 왜 그랬는지 짐작이 제대로 가질 않는다. 세상 만물의 지식을 지니고 삼라만상을 꿰뚫어보는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기묘한 일이다. 딱히 거짓을 말한 것 또한 아니고 이상한 것 또한 아니니 별로 상관은 없을 테지.
중합지옥에 과로로 쓰러졌던 제 1보좌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라는 것은 보통 단속을 의미했기에 바가지 이상의 덤터기를 씌우는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버렸지만 중합지옥에는 화류가 이외에도 아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자신이 이 일을 대체 몇 년이나 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오늘 단속하러 나온 것이 아니었으니 별로 상관도 없고. 화류가를 어정거리다 눈에 띄는 한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미녀가 많다, 라고 소문난 중합지옥에서도 특출나게 눈에 띄는 가게의 한 여인. 모습을 보자마자 알 수 있는 그녀의 이름과 정체. 달기-. 딱히 그녀에게 흥미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녀 또한 여자이니 알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에게 장미꽃 한송이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바로 해주기는 커녕 그것을 준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그 썩을 백돈자식 이라고 대답하자마자 그저 웃기만 하고 대답해 줄 수 없다, 라는 소리만 한다. 별로 상관은 없었다. 알고 있을만한 여성은 그녀 하나 뿐이 아니었으니. 포장마차의 여성, 오반, 소꿉친구인 오코씨까지. 그러나 그녀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다 똑같았다. 고작 꽃 송이 주제에 뭔 비밀에 쌓여 있는건지.
" 쯧, 귀찮네요. 백돼지가 무슨 짓을 한 거야. "
그 뒤로도 미키 양, 마키 양 한테도 물어봤지만 마키 양은 다른 소리만 하고 미키 양은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 백돼지자식이 벌인 일이니까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을 터인데 정작 알 만한 이들은 전부 입을 다물어 버리니 답답해져 버렸다. 그렇다면 본인을 찾아가 때리고 패서라도 답을 얻어내는 수 밖에. 완전하고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버리고는 기한이 오늘까지였던 약재도 받아낼 겸 도원향으로 갔다. 먼지 하나 없고 깨끗한, 당장이라도 물을 끼얹으면 색이 더욱 옅어질 듯한 빛을 머금은 곳에 홀연히 자리잡은 토끼한방 극락만월이라는 글자에 혈압이 오르는 듯 했다. 그리고 자신은 저 백돼지 자식한테 딱히 잘 대할 마음이 금어초 비늘 한조각 만큼도 없었으므로 즉각적으로 쇠몽둥이로 그를 맞히는 걸로 시작했다.
" 아프잖아! 날 죽일 셈이냐!! "
피를 쏟아내면서도 멀쩡히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면 보통의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내구도는 튼튼한 모양이었다. 저 놈의 내구도도 약하면 속이라도 시원할 터인데, 그 또한 아니니. 하지만 그런 덕분에 자신이 마음 놓고 팰 수 있는 것이었지만. 온 몸의 힘을 실어서 후려쳐도 멀쩡히 일어나니 오히려 더 짜증이 난다.
" 그래서, 뭡니까. 어느 누구도 네 놈이 상대라니까 대답을 안 해주잖습니까. "
아무래도 그녀들이 순순히 대답할 거라는 생각을 한 제 잘못인 것 같다. 제대로 아는 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완전한 대답을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간과했다. 아무래도 관장하는 영역을 바꿔야하나... 한숨이 절로 흘러 나왔지만 씁쓸하면서도 한 켠으로는 안도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오니가 알면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으므로.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완전히 그만 둘 생각 또한 존재하지 않았지만. 저 오니의 말에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자신 또한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고 이번에는 품 안에 한아름 안기는 잘 꾸며진 99송이의 장미꽃을 품에 안겨주었다. 이게 뭐냐는 것이 얼굴에 떠오름과 동시에 패대기 치려는 기미가 보이길래 다급하게 소리쳤다.
" 그거 패대기 치면 약 안 줄거야! "
" 약재로 협박하다니 치사하네요. 신수 맞습니까? 아, 우제류였지. "
" 우제류 아니라고!! "
" 우제류잖습니까. 백돈. 어쨌든 약재가 필요하니 일단은 들고 가겠지만요. "
생각보다 얌전히 들고 돌아가는 것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어도 눈 앞에서는 패대기 쳐지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하, 저 오니가 뭐라고 자신이 이런 것 까지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어떤 여인에게도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인 기억이 없는데 왜 하필 저런 도S 오니에게 손 많이 가는 짓까지 하고 있는겐지. 호오즈키는 호오즈키대로 혼란에 휩싸였다. 그 망할 우제류자식이 뭘 꾸미고 있는건지는 몰라도 약재를 만드는 주도권은 저 쪽이 지니고 있었기에 그 앞에서 던져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건장한 사내에게 이런걸 건네줘봤자 어울리는 모양새도 아닐텐데 뭐 하는 짓거린지. 신종 괴롭힘인가.
" 아, 호오즈키님! 웬 꽃이에요? 여성한테서 선물 받은거에요? "
" 혹시 오코 누님이라던가... "
" 아뇨. 전혀 다른 사람.. 아니 우제류 입니다. "
" 다른 사람이요? "
" 백돈, 그러니까. 백택입니다. "
언뜻 나스비 씨와 카라우리 씨의 눈에서 신기한 듯한 눈빛이 보인 것 같습니다만, 착각이겠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무런 말 하지 않았으니 딱히 제가 손을 댈 부분 또한 아니고. 하지만 정말 이 쯤되면 백돈, 그 썩은 신수 자식이 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건지 신경쓰이다 못해 짜증이 치밀어 오릅니다. 뭣보다 약재의 기일 또한 다 되어 가는데 제대로 완성도 안 해놓고. 일을 제대로 하긴 하는 건가, 그 우제류 자식. 온갖 짜증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짜증을 낼 시간조차 아깝다. 엄청난 양의 서류가 쌓이고 있었고 망자의 재판 또한 밀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면 사흘 밤낮을 달려야 할 판이 되어버릴 테지. 짜증은 일이 끝나고 나서라도 내면 된다. 그러니 일단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지.
“주문해둔 약재의 기일이 다 되었는데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군요.”
“아, 염라는 없나.. 가지러 오질 않길래 직접 갖다주러 왔어.”
스쳐지나가는 것과도 같은, 제법 가벼운 듯하지만 연륜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무게의 목소리, 웬만한 향은 그리 짙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건만, 은은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듯한, 매우 익숙한 상대의 목소리. 그리고 약재를 든 손의 반대편에는 한 층 더 진한 향을 내뿜는, 그의 상반신의 절반 정도를 가릴 정도의 커다란 장미꽃다발.-퍽 친절하게도 108송이라고 세주기까지 했다.- 이 자식은 이제 정말 사내한테까지 취미가 생긴건가.
“약재라면 지금 찾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내놔, 백돈.”
“ 이 오니!! 약이랑 같이 이것도 받아라. ”
“꽃은 필요없습..”
“같이 안 받으면 약 안 줄 거야.”
아무래도 이 썩은 신수자식은 여인들을 넘어서 사내한테까지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게다가 신수가 맞기는 한 건지 유치한 협박까지. 약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기는 했지만, 슬슬 화병이 터질 것 같아서 계속 걸리던 것을 아예 해결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이것을 물어본다는 것은 불쾌했지만, 이런 걸 잘 알 것 같은 여성들은 상대를 듣자마자 그저 웃으며 그 자리를 피해버려서 물어볼 사람이라고는 준 놈밖에 남질 않았으니.
“백돈, 당신이 준 거 다 뭡니까.”
혹시라도 약재가 상할까, 꽃과 약재를 따로 내려놓고는, 한 시가 급한 이때에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어쩌고 할 시간 따위는 없었기에 그냥 대놓고 물어봤다. 무엇보다 지금 자신에게는 더이상 걸릴 것 또한 없었다. 이걸로 세 번째다. 세 번까지 봐주었으면 이미 제 의무는 끝난 것이다. 평소와는 달리 망설이는 듯 하다가 그의 목소리에 염라청 안에 울렸다. 분명 들을 이는 자신 뿐일 터인데, 울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그 말에는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이 맞는가, 하는 의심조차 불러일으킬 정도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꽃에는 꽃말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게 꼭 종류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거든. 어차피 지금은 너 밖에 없으니 그냥 얘기 해버려도 괜찮겠지. 처음에 건넨 한 송이는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 다음번에 건넨 99송이는 영원한 사랑. 이 경우에는 내 평생이겠네, 그리고 오늘 건넨 108송이는-, 나랑 결혼해줄래, 라는 의미. ”
“농담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약재는 받았으니 도원향으로 꺼져주시죠.”
“딱히 농담은 아니야. 볼 일은 끝났으니 가긴 할테지만.”
말이 되는가. 저 썩은 신수와 자신은 주변에서 평하기를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상대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가 중합지옥에 들렀단 소리를 최근 시찰에서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하는 건 그의 말대로 딱히 장난질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저것에 대한 대답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여도 괜찮겠지. 안에서 무언가 울렁거리는 것은 그저 짜증이 일어난 탓일 테지. 그렇다고는 해도 제가 이런 불편한 기분을 안고 있을 이유는 없었기에 몇 번째인지 모를, 계속 한 문장에만 머물러있는 문서를 치워버리고는 백돼지가 있는 쪽으로 가서 그의 옷 끝자락을 쥐었다.
" 당신의 말이 진짜인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대답 또한 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당신과 좀 다른 관계로 엮이는 것이 아주 나쁠 것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일단, 그래보죠. 허락 아닙니다 이 백돼지 자식. "
말을 마치자마자 선연히 부는 바람에 그의 목소리가 묻혀 흩어졌다. 단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가 여지껏 본 적 없던 미소를 환하게 지었다는 것. 환상이든 뭐든 아무려면 어떤가. 자신도, 그도, 확신이라는 것은 없을테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만들어가는 수 밖에-.
'2차창작 > 호오즈키의 냉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라카가]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0) | 2014.10.11 |
|---|---|
| [白鬼] 이름 (0) | 2014.10.08 |
| [白鬼] 무한과 유한의 온도 차 (0) | 2014.08.13 |
| [白丁]어느 옛날의 이야기 (0) | 2014.08.13 |
| [白鬼] 붉은 실이 검게 변할 때 (0) | 2014.08.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