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붕주의

 

 

 새하얗다, 그를 처음 보고 든 생각은 그 뿐이었다. 몇 겹이고 겹쳐입은 옷 속에서 살포시 나와있는 손도 고와보였고 어쩐지 자신이 다가가면 안 될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신은 할 일이 있었다. 이 일이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들을 지 몰랐다. 심부름을 하고 있던 도중에 정신이 팔리다니, 어쩐지 묘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에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꼭 손을 대면 사라질 것 같은 신기루와 같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제대로 분간도 안 되는 그 사람은 저 높은 곳에 있다는 사람보다도 더 높아보였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을까, 부스스 눈을 뜬 그 사람은 살며시 웃으며 제게 말을 걸었다.

 " 작은 사람의 아이구나,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니? "

 처음 들어보는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 당황스러움이 먼저 다가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고 제게 시켰던 일을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금 자신을 불러세우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제대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일,을 하고 있다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안 되던 초반과는 달리 목소리를 확실히 미성을 띤 남자였다. 아직 어린데도 일을 하는거냐며 투덜거리던 그의 말을 듣고 있자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치고도 고운 얼굴과 화려한 옷, 어딘지 분위기가 다른 듯한 말투, 사람이 맞기는 하는 걸까.

 " 가끔 이리로 오렴, 당분간은 여기 있을 생각이니까. 나랑 놀자구나. "

 분명히 어른인데 자신에게 놀자고 하다니, 저 사내는 할 짓도 정말 없는 걸까. 하지만 입 밖에 냈다가 무슨 소리를 들을 지 모르기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처음 만난 그 날은 대화로서 끝이 났지만 그 다음날에는 자신의 손을 이끌고 작은 꽃밭을 가고, 그 다음날에는 좋은 걸 보여주겠다며 작은 장이 설 때마다 데려가서 먹을 것 등을 사서 안겨주기에 당황스러웠다. 먹을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렇게나 많은 양을 한 번에 주면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건 뻔한 데다가, 몸이 음식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니까. 그래도 사준 음식은 제법 맛이 좋았지만.

 며칠이고 끊임없이 찾아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부담스럽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순수한 호의는 처음이었으므로 거절하기 힘든 것 또한 있는 법이었다. 찾아갈 때마다 처음 겪는 경험들이 조금은 두려우면서도 신기하고 기뻤다. 예쁘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 또한 처음 겪는 것이었으니까.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볼 틈 따위는 없었으니까. 며칠이고 며칠이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무엇이든 기간이 길면 좋지 않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던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며칠이고 늦게 돌아오는 자신을 추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일이 안 된다며 손찌검이 날아왔다. 반항하는 것도 막는 것도, 변명을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최대한 덜 다치도록 몸을 웅크리고 묵묵히 받아냈다. 흙투성이가 된 옷을 털어내고 입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비릿한 쇠냄새에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꾹 눌러참고 이제는 익숙해진 길을 걸었다. 그가 있는 곳은 늘 정해져 있었으니 찾는 것쯤은 쉬웠다. 엉망이 된 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를 보는 것을 거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 어라, 오늘은 좀 늦었...왜 이리 심하게 다쳤어? "

 심하게 놀란 얼굴을 하며 안쓰러운 표정을 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친 것은 분명 자신이건만 훨씬 아프고 괴로운 듯한, 울 것만 같은 표정을 하는 그를 보자 어쩐지 모든 것을 얘기할 수가 없었다.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있자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를 살며시 토닥였다. 누군가를 달래본 적이 없어서 이것이 맞는지 어쩐지를 모르겠지만, 자신이 하는 것에 조금 덜 괴로운 표정을 짓는 그를 보자 어쩐지 조금은 안도가 되었다. 살짝 손을 떼고 그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자신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익숙한 그 동작에 눈을 질끈감고 움츠러 들자 살며시 닿아오는 감각은 익숙한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부서질 것 같은 것을 쓸어주는 감촉에 살며시 눈을 뜨자 고운 그의 얼굴이 보였다.

 " 초.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

 상냥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은 생소했다. 그리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따뜻해서 그저 푹 고개를 숙이고만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그 날도 별로 다를 것은 없었다. 그가 난생 처음 자신에게 다정함이라는 건 어떤 것인지 행동으로 보여준 것 빼고는.

 며칠이고 농사를 지어야하는데 비가 안 온다며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농사에 관한 것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은 아무리 어려도 분위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다 되어가도록 비가 올 기미가 안 보이자 마을의 어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려고 모이는 거겠지. 비가 오지 않으면 다들 죽을 판이니까.

 자신에게 새 옷을 입히고 전후의 얘기를 했다. 그러고서는 하는 얘기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 원망마라, 초. "

 " 괜찮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방법. 원망 따위 아니 합니다. "

 머리로는 납득해도 마음으로는 힘들었다. 아, 그 사람 어떻게 하지. 내가 없어도 괜찮을 사람이겠지, 아마도. 그 사람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히 아쉽네... 하루, 이틀, 사흘, 며칠 정도는 버틸만 했지만 나흘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을 붙들고 있기 힘들었다. 어질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놓아버렸다. 아, 이제 정말 죽은 건가....

 이상하다. 며칠이고 그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늦어도 꼭 와주곤 했었는데, 작고 약한 몸으로 뭐가 그렇게 바쁜 걸까. 하지만 바빠질 거라면 얘기를 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이 곳에서 머무르는 것은 그 아이를 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있던 거였는데, 혹시 마을에 가면 알 수 있으려나. 늘어져있던 몸을 일으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 아이에게서 간신히 얻었던 마을의 위치를 더듬어 그 곳으로 가보았다. 분주한 마을 사람들 속에 작은 아이들이 보였지만 어디에도 그 아이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 저기, 여기 초 라는 아이 있어? "

 마을 사람 중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자 표정이 이상하다. 모른다는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켕기는 것이 너무 많다. 그 반응, 그 표정, 꼭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를 왜 찾는듯한 그 표정, 가장 많은 죽음을 봐왔던 자신으로서는 그게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감이 엇나가길 빌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신당과 그 앞에 있는 작은 아이의 몸. 아주 익숙한 그 인영에 손이 떨려왔다. 이런 것은 바라지 않았건만, 어떤 생명이어도 소중한데, 어째서 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작고 여린 몸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다. 조심스레 아이의 몸을 끌어안고 소리 죽여 울었다. 눈물이 툭툭 떨어지며 아이의 옷을 적시고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했다. 뭐가 신수고 길조의 상징인가. 호의를 가진 아이 하나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건만.

 " 초, 초..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

 뼛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무력감에 이를 악 물었다. 모든 것에 익숙하지 않은 듯 조그만 손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준 아이였고, 자신 또한 처음으로 호감을 품은 아이였는데, 이렇게 보내버리다니. 자신의 무력감에 슬픔만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미 가버린 아이를 되돌아 오게 할 수는 없는데다가 그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나의 톱니바퀴가 어긋나면 모든 톱니가 와르륵 무너져버린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 초, 나는 너를 되살려줄 수는 없어, 그렇지만 더 이상 너와 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할게.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아. "

  아이가 나쁜 곳으로 가지 않도록 길을 열어주고는 현세에서 벗어났다. 그 곳에 계속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소중하고 소중해서, 다치지 않기를 바랐는데, 처음 다쳐서 왔던 그 때에도 인간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되기에 그저 참았었다. 하지만 이번의 것은 너무 크다. 네가 없어진 자리의 허전함이 너무 커서, 견딜 수가 없다. 혹시라도 나중에, 아주 우연이라도 너를 만난다면, 그 때에는 이리 허무하게 놓치지는 않을거다.

 이번 생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다시 만난다면 그 때는,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둘테니.

 " 꼭 언젠가는 다시 보길 바란다, 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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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 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