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붕주의
*백초? 백귀? 어느 쪽인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꿈을 꾸었다. 하얗고 작은 어린아이의 손이 스친 감각에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꿈에서 깨었다. 장자의 호접지몽도 이것보다는 덜 찜찜했을 듯 싶다만, 내가 인간도 아니고 그런 기분을 어찌 알겠어.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라... 한낱 인간이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분명 그 꿈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 같았는데, 워낙 이것저것 보고사니 가끔은 머릿속에서 과부하라도 일어나는 건지 어쩐건지, 확실히 찾기 힘든 기억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어제 마신 술도.
" 타오타로군 황련탕... "
" 이미 만들고 있어요. "
인간이라면 딱 죽을 거 같다, 라고 하는 그 정도려나. 회복력도 좋고 그리 약한 주량도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오니와 시비가 붙은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지. 술이 취하지 않는 오니를 상대로 내가 뭐 하나 싶기는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오니랑 있으면 묘하게 냉정한 판단이 잘 되질 않는다. 삼라만상의 지식을 관장하는 신수인 자신이지만 감정을 관장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보다 그 쪽이었으면 어찌 그 고운 여자들을 다 만나고 살겠어, 그런 피곤하고 힘든 감정은 사양이다. 세상에 어여쁜 여인이 차고 넘치는 데 한 아이에게만 묶이는 것은 실례지, 암.
" 어라, 백택님. 호오즈키님이 오셨는... "
타오타로군의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제법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는 쇠몽둥이가 날아왔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날아온 몽둥이는 제대로 제 몸을 벽에 꽂았다. 이자식, 얼마나 풀파워로 던지는거야. 울컥하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쇠몽둥이를 치워내고 코피가 뚝뚝 흐르는 얼굴을 닦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 최소한 인사라도 하라고!! "
" 어라, 우제류한테 말이 가능하군요."
" 신수를 분류하지마!! "
아 저자식, 일일이 열받게 하네. 으득,하고 이가 갈렸지만 대충 쥐어주고 쫓아내자 싶어 주문서를 확인했다. 아, 선도인가. 선도라면 수확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리 바쁜 것 또한 아니지. 주문량만큼의 선도를 담고 있다가 문득 녀석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여인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새하얀 손. 뭐, 골격이야 딱 사내놈 티가 나지만, 하지만 저 손의 모양은 어딘가 익숙하다. 어디서 본 거지, 고민을 하고 있자 쯧, 하고 혀를 차며 우제류는 일도 못하는 거냐고 하는 그 오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제류가 아니라고 짜증을 내며 선도를 쥐어주고 내쫓아 버렸지만, 어딘가 조금 걸린다. 그 손, 어디서 본 듯 한데.. 대체 어디서 봤지.
" ...님! 백택님! 주문서 더 들어왔다고요. "
" 아, 진짜 주문서를 왜 한꺼번에 주는거야. 이거 철야해야 하잖아. "
짜증을 내면서도 손을 움직였다. 짜증은 짜증이고 일은 일이다. 게다가 일을 할 때만큼은 집중을 하는 쪽이 더 낫다는 것을 꽤나 오래 전에 깨달았기 때문에 미루지는 않았다. 단지 양이 문제일 뿐이다. 아, 정말 귀찮아. 그리고 아침에 꿨던 그 꿈, 뭔가 이상하다. 마치, 오래 전에 누군가와 만난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만나는 인간이 한 둘도 아니고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뭔가 그 아이는... 아이? 아이라는 단서만으로는 워낙 막연하지만 적어도 아이의 손 끝에서 보인 소맷자락정도는 기억할 수 있었다.
" 조금 시간이 지난 일이라 잊고 있었네. "
" 네? "
" 아, 아무것도 아니야. 타오타로군 이거 마무리만 좀 해줄래. "
분명히 그 시대는 조금 예전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현세의 아이, 현세의 아이가 선계로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니 가끔 전생이 아니라 천국으로 오는 아이도 있기야 하지만 대부분은 사이노카와라에 있거나 하니까, 무엇보다 그 아이의 기운이 망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아있을 때 닿았다는 건데, 어딘지 익숙하고, 알아야 할 것만 같지만 왠지 알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야 이거, 왜이리 혼란 스러운 건데. 속이 울렁거린다. 시야가 어질거리고 제대로 된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취한 것도 아닌데 이게 대체 뭐야, 눈살을 찌푸리고 간신히 정신을 잡았다. 속 아파, 숙취의 영향과는 확연히 다르다. 손...그 손, 정말 익숙한데..
" ...ㅣ.. 백돼지, 몇 번을 부르는데 대답을 안 합니까? "
하얗고, 작았던 그 어린 손이 커져서 제 시야 앞에 꽉 들어찬다. 도륵, 하고 흘러내린 눈물이 제 자신도 당황하게 했다. 어, 어라? 이게 뭔....
" 뭘 울고 앉았습니까. 약이나 내놓으시죠. "
" ...초. "
" 지금..무슨.. "
짜증이 잔뜩 묻어나던 목소리가 멎고 손이 멈췄다. 제 앞을 확 가로 막은 채였기는 하지만 온전히 막지는 못했다. 아아, 드디어 기억났다. 내 옛 기억 속의 작은 어린아이. 한없이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했던 그 아이가 너였구나. 몇 천년전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알아채지 못했었다. 뭐가 삼라만상의 지식을 아는 신수인가, 아끼던 아이의 얼굴조차 기억해내지 못한 주제에. 제 명을 다하고 윤회의 굴레에 들어가야 할 아이를 지켜주지도 못했다.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감싸고 강인함으로 무장한 아이는, 그저 내 기억속에서 그대로 자란 아이일 뿐이었다.
' " 신수님, 나중에 본 다면, 알아봐 주세요. " ' 나는 이 말에 긍정의 대답을 했었고 아이를 보게 된다고 해도 거의 없을 일이라고 여겼기에 더 신경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서라도 기억난 것이 어디야. 아침의 그 꿈이 도움이 될 줄이야. 엄청 찝찝하고 불편했었는데 오히려 그 찝찝함이 도움이 되다니. 나는 사람이 아니지만 생 자체는 역시 새옹지마인가.
" 늦어서 미안, 어서와, 초. "
" ..다녀왔습니다.. 신수님.. "
평소와는 달리 애달픔을 담은 목소리가 떨려왔다. 어쩐지 어린 날의 아이와 겹쳐보여서 으르렁대던 것도 잊고 아이를 끌어안았다. 확연히 다른 반응에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알아봐주겠다고 한 주제에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설마 오니가 되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아서 더 늦어버린 걸테지. 더 늦어버리기 전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해주고 다시금 얘기해 주었다.
" 어서와, 초. 사람의 아이야. "
아아..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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