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호오, 백귀, 캐붕주의. 동성애적 요소가 있으니 거부감 있으신 분들은 살포시 뒤로.

 

 

 그려놓은 수채화와도 같은 포근하고도 옅은 채도가 가득한 풍경은 자신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질릴 정도의 풍경이었다. 확시히 편안하고 포근해서 지내기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영원을 사는 자신으로서는 오랜 시간이 흐르니 무덤덤해지는 곳밖에는 되지 않았다. 지옥의 뜨겁고 강렬한 색보다는 편안해지는 기분이 많으니 여자를 꼬셔 오기도 편했고 자신이 지내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 이 곳에 사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느끼겠지. 늦은 시간에 일어나버리니 약간 속이 빈 느낌에 출출함을 느꼈다. 몸의 기를 보강하는 재료와 맛을 좋게 해주는 간을 맞춰 약선을 끓였다. 약재의 냄새와 함께 맛 좋은 제철의 것이 섞인 냄새가 식욕을 돋구었다. 뜨끈한 약선을 한 국자 퍼올리자 향긋한 내음이 가게 가득 퍼졌다. 누굴 깨우기 딱 좋은 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타오타로군은 지금 휴가 중이니 현재 이 곳에는 자신과 토끼들 뿐이었다. 이 한가로운 평화를 방해받지 않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쾅-!

 ..아무래도 난 생각을 말아야겠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들려온 소리는 굵직한 바리톤 보이스. 싫어도 짐작가는 목소리의 주인은 저와 한날한시가 멀다하고 싸우는 지옥의 제 1보좌관이자 오니였다. 채도가 낮은 이 곳의 풍경과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듯 새까만 검은 색은 순식간에 제 시선을 사로잡았다. 확연히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서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야에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저거. 투덜거리면서도 용건을 묻자 금단과 약재 주문품목을 자신에게 들이민다. 따뜻한 약선을 아직 먹던 도중에 들어온 일거리는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일은 일이니까 확실히 처리해 두는 쪽이 좋겠지. 그렇게 판단을 끝내고서는 준비해 두었던 금단을 먼저 내어두고는 약재 품목이라며 건네준 종이를 펼쳐들었다. ...아 이 오니는 무슨 주문을 몰아서 해, 저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투덜거리면서도 이것저것 약재를 꺼내어 올려놨다.

 " 주문은 좀 제대로 된 텀을 갖고 하지, 이 오니. "

 " 오니 맞습니다만. "

 저렇게 선선히 넘어가 버리니 더 대꾸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저 오니는 여전히 토끼들을 안고 얌전히 기다리는군, 아아.. 그러고보니 귀신은 복숭아나 그 가지에 약하다던가. 먹거나 닿으면 아픔을 느끼고 쫓아진다고들 하지. 하지만 그건 악귀일 때의 얘기지. 좋은 예로 저 오니도 복숭아가 가득한 이 도원향에 있는데 멀쩡하니까. 나로서는 좀 아파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좀 있지만...

 " 언제 다 됩니까. "

 " 성질 되게 급하네, 이 품목들을 다 하려면 시간 걸린다고. 선도라도 먹고 있던가. "

 무의식적이라는 게 무섭다는 것을 지금 체험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의외로 저 오니가 순순히 선도를 집어들어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지옥의 축제때 저 오니가 입이 작은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고 있자니 그 때와는 훨씬 다른 기분이다. 앙 다물린 작은 입술 사이로 선도가 와작 베어물어지고 꼭 닫은 입술이 우물거린다. 달디 단 선도의 향이 훅 퍼지고 절로 식욕을 자극하는 소리와 향이 제 귀와 코끝을 자극한다. 아, 약선을 먹다 말고 일하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군. 가볍게 쯧,하고 혀를 차고는 일에 집중하다가 손을 멈추었다.

 앙 다물린 작은 입술 사이로 잘 익은 뽀얀 선도의 과육이 들어가서 짓이겨진다. 와작, 하는 소리와 함께 달큰한 향이 훅 퍼지고 동시에 과즙이 작은 입술 안에 전부 담기지 못해 조금씩 흘러 나오는 것이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멍하니 정신이 팔렸다. 몇 번이고 베어물어지며 작아지는 선도의 크기와는 달리 과즙은 점점 흘러 넘쳤다. 당도 높은 선도가 과즙을 흘리고, 그것이 담긴 손을 통해 손목으로, 혹은 그 아래까지 흘러 내리며 똑, 하고 바닥과 부딪혔다. 입가에 흘러 넘치던 과즙을 닦아내고 손에 질퍽하게 묻어 끈적거리는 과즙을 닦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선정적인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진득한 달콤함을 품은 향이 저 오니의 몸에 잔뜩 배여서 체향으로 뒤섞이는 것같은 기분마저 든다.

왜 그랬는지는 제 자신조차 모르겠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타박, 타박, 하고 발걸음을 옮기며 그 오니의 턱을 붙들고 살포시 입술을 겹쳤다가 떼었다. 여인의 매끄러운 입술과는 확연히 다른 감각이지만 묘하게도 어딘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에 무의식적인 것이 지배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

 " 약재는 나중에 찾으러 오겠습니다. "

 화를 내지도 않고 주먹이 날아오지도 않았다. 담담히 대꾸하는 저음의 목소리에 자신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 곳과는 완전히 배제된 듯한 새까만 뒷모습을 보며 과즙이 흘러내리던 모습이 자꾸 생각나자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아, 그래. 그저 선도의 달큰한 향에 취한 것 뿐일테지.

 

Posted by 한 율 :